교토 과거를 현재로 끌어왔다… 자연을 집안으로 데려왔다

일본 교토


현대식 고층 빌딩 사이로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걸어가는 게이샤들이 보였다. 금실, 은실로 화려하게 수놓은 기다란 기모노 자락을 한 손으로 여며 쥐고, 또각또각 게다 소리를 내는 게 눈에 확 띄었다. 하지만 그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은 관광객들뿐이었다. 1000년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바로 일본 교토다. 794년부터 1868년까지 1000년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사람들은 흔히 교토를 얘기할 때 ‘한국의 경주’라고 한다. 하지만 교토는 전통만 고집하지 않는다. 과거의 것을 현재로 끌어와 ‘모던(modern)’하게 재해석한 도시다. 자칫 낡아 보일 수 있는 옛것에 현대식 옷을 입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교토 중심부 기요미즈데라 본당에서 내려다 본 교토 시내. 고풍스러운 건물에 비친 은은한 조명이 1000년 역사의 깊이를 말해주는 듯하다. / 교토시관광청 제공
◇일본식 이탈리아 레스토랑과 료칸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달리면 교토 중심가다. 차에서 내리면 언덕 위로 헤이안(平安)시대의 위엄을 갖춘 장엄한 절 기요미즈데라(淸水寺)가 모습을 드러낸다. 붉은색 염료로 칠한 입구를 지나 본당에 올라서면 벚나무, 단풍나무 사이로 교토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백년 전부터 화과자, 도자기, 직물을 만들었다는 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 산넨자카(産寧坂). 기요미즈데라에서 산넨자카를 따라 걸어내려 오면 이탈리안 레스토랑 '가든오리엔탈'이 있다. 일본화의 거장 타케우치 세이호가 13년간 살던 별장을 레스토랑으로 리모델링한 곳이다. 이탈리아 요리를 하는 곳이지만, 교토를 '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장 일본적인 레스토랑으로 통한다. 교토산(産) 식재료들로 만든 간결한 이탈리안 요리를 먹으며 무심코 창 밖을 바라보면, 세이호가 사랑했다는 야사카탑이 보인다. 언제든 아름다운 탑과 벚꽃, 정원을 즐길 수 있게 창문을 오각형으로 만들어놓았다.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지혜다.

교토에서 빼놓지 않고 들러야 할 곳은 '료칸(旅館·일본식 여관)'. 일본 목욕 문화와 손님 접대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일본 문화의 정수'라 할 만하다. 난방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일본에서는 자기 전에 꼭 목욕을 해 몸을 덥힌다. 손님이 방문하면 주인이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도 따듯한 목욕물이다. 교토 인근 아라시야마역 앞에 있는 '료칸 카덴쇼'는 일본 료칸과 최고급 호텔을 접목시킨 숙소다. 4층짜리 나지막한 건물에 들어서면 종업원들이 가장 먼저 건네주는 것이 평상복용 기모노인 유카타다. 1층에 있는 야외 온천에 몸을 담그면 눈앞에 늘어져 있는 버드나무 가지와 물 위에 떠 있는 유자향에 눈이 스르르 감긴다. 온천욕을 마친 뒤 유카타를 걸치고 객실로 올라가면 창 밖으로 일본식 야외정원이 보인다. 엷은 조명 아래 조그마한 대나무 숲과 줄지어 있는 바위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으면 밤이 더 길지 않은 게 아쉽다.
교토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꼽히는 산넨자카. 수백년 된 상점들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 최연진 기자
◇염색공방·전통 찻집
아라시아먀 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산 아래에는 염색공방 '유메유사이'가 있다. 사철나무로 둘러싸인 공방에 들어서면 따듯한 녹차를 한 잔 내준다. 차로 입술을 적시고 숨을 돌리면 집안 곳곳에 걸려 있는 화려한 천에 마음을 뺏긴다. 공방 주인은 일본식 전통 염색작가 오쿠다 유사이. 자신의 작품을 가게에 전시해 보여주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직접 염색을 할 수 있도록 천과 염료를 내준다. 기모노뿐 아니라 넥타이, 스카프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패션아이템들도 전통 기법으로 만든다. 최근 오쿠다 유사이씨의 염색기법을 배우고 싶다며 명품브랜드 에르메스 관계자들이 직접 공방을 찾기도 했다. 에르메스가 탐낸 염료로 손수건을 만들다 보니 마치 내가 장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라시야마에서 고층 건물이 늘어선 시내까지는 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은은하게 퍼져나오는 차 향을 따라갔더니 300년 넘게 차를 팔아온 '후쿠주엔'이 나왔다. 다도 체험을 신청했더니, 따듯하게 덥힌 물과 말차(抹茶·찻잎을 찐 뒤 맷돌에 갈아 가루낸 것)를 든 직원이 자리를 안내했다. 정성스레 차를 우려낸 그가 앞으로 다가왔다. 손잡이가 없는 둥근 찻잔을 왼손 위에 올리더니, 오른손으로 두어번 돌려 건넸다. 그릇에도 얼굴이 있기 때문에 얼굴에 해당하는 그릇 정면을 뒤로 돌린 것이라고 했다. 그게 그릇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때문에 차를 서너번에 나눠서 마신 뒤에는 다시 손바닥 위의 찻잔을 놓고 반대 방향으로 두어번 돌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찻잔을 내려놓고 무심결에 창밖을 보면 그곳에는 또 자그마한 정원이 있다. 언제, 어디에든 자연을 옆에 두고 있는 일본인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건물 지하에 가면 자신의 취향대로 차를 블렌딩해 가져갈 수 있다. 커피 같은 것만 블랜딩하는 줄 알았다고 하니, 차를 우리던 기모노 차림의 직원이 서운한 내색을 한다. 현지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자신의 취향대로 차를 마실 수 있게 해주려는 배려라 했다.

해질 무렵 교토에 와서 인상깊게 보았던 게이샤가 기모노 자락을 흩날리며 지나간다. 바쁜 듯 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뒷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문득 말을 걸고 싶었다. "당신은 왜 게이샤가 됐죠?" "신기한가요? 이게 교토에요." 옛 풍습과 몸짓을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전하는 그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항공편: 대한항공은 김포―오사카 직항을 하루 4회, 인천―오사카 직항을 하루 3회 운행하고 있다.

▲준비물: 일본은 전압이 110V이기 때문에 변압기가 필요하다. 고급 호텔이라고 해도 변압기를 비치해두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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