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 벤치... 로트레아몽의 시가 어울리는 곳
여행자는 알고 있다. 때로는 '길'을 잃는 것이 '또 다른 길'을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경상북도 경주엔 조용히 홀로 앉아 들뜬 마음을 차분히 달랠 공간이 많다. 경주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을 위해 '길을 벗어나' 사색과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장소 몇 곳을 소개한다.
진평왕릉 주변 벤치
너무나도 선명한 진녹색이 전해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에 '이곳이 과연 현실 속 공간이 맞나'라는 의문마저 들었다. 지척의 도로에선 차량이 질주하고 있음에도 이곳만은 매미와 풀벌레가 울어대는 피안(彼岸) 같았다.
족히 수백 년은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을 커다란 나무가 만들어낸 시원스런 그늘. 그 아래 접이식 간이의자를 펴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선경(仙境)이 따로 없었다. 그악스러운 8월의 더위가 한풀 꺾이는 느낌이 들었다.
경주시 보문동엔 신라 진평왕의 능이 자리해 있다. 널찍한 평야 한복판에 들어선 거대한 봉분. 그 풍경만으로도 돌올하지만, 진평왕릉의 진가(眞價)는 주변 거대한 녹지에서 드러난다. 소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수목과 '초원'이라 불러도 좋을 넓은 초록 풀밭, 여기에 고전적으로 디자인된 목조 벤치까지 그림처럼 준비돼 있었다.
소음과 매연 가득한 도심에서 지극히 가까운 곳에 이런 '사색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름이 알려진 여타 관광지와 달리 오가는 사람들이 적어 조용한 휴식이 가능해 보였다. 시원한 그늘에서 야외 독서를 원하는 이들에겐 안성맞춤이다.
1969년 사적 제180호로 지정된 진평왕릉을 호위하고 선 것은 궁궐의 병사들이 아닌 키 큰 나무 몇 그루. 그럼에도 왕의 깊은 잠을 방해할 이들은 없었다. 그만큼 주위 풍광은 고요하고 평화스럽다. 1천 년 전 서라벌 사람들도 이곳에서 피크닉과 데이트를 즐겼을 법하다.
능을 찾았던 날엔 대구에서 왔다는 중년 부부 한 쌍이 진평왕릉을 한 바퀴 돌아보곤 벤치에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정겹고 보기 좋았다. 그들의 목소리가 한없이 낮았던 이유는 1400년을 이어진 진평왕의 곤한 잠을 깨우기 싫어서였을까?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고 싶은 여행자에게 권하고픈 장소다.
삼릉 향기로운 소나무 숲
경주시 배동 울창한 소나무 숲속엔 신라 왕들의 유택(幽宅)으로 추정되는 3기의 능이 있다. 여기에 잠든 이들은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
신덕왕과 경명왕은 신라가 기울어가던 시기의 통치자였다. 당연지사 외부의 침입이 잦았고, 이로 인해 백성들의 고통도 극심했다. 국력이 쇠하니 영토 또한 터무니없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신라 전성기의 왕들처럼 거대하고 화려한 장식의 왕릉을 만들 여력이 없었을 터.
삼릉 모두는 봉분이 낮고 능을 지키는 석상(石像)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허물어진 역사의 폐허에 숨겨진 보석처럼 반짝인다. 의외로 이런 비극의 현장에서 감동을 느끼는 여행자가 많다고 들었다. 아주 가끔은 번듯함보다 남루함이 빛나는 시간이 있다.
삼릉을 삼릉답게 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오브제'는 주변을 둘러싼 기묘한 형상의 소나무 수백 그루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서늘한 음지는 폭염에 시달려온 여행자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돼준다.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밀어(蜜語)를 속삭이고 싶은 연인에게도 최고의 성지로 다가온다.
삼릉은 경주국립공원 남산 지구의 시발점이다. 이곳을 출발해 금오봉-용장사지-용장골까지 가는 4.6km 등산 코스도 인기가 좋다. 산을 오르는 게 익숙한 사람의 경우 3시간이면 주파가 가능하다고 한다.
"등산길에선 100개가 넘는 갖가지 형태의 불상과 석탑, 절터 등을 볼 수 있어 심심할 겨를이 없다"는 게 경주국립공원사무소의 설명. '사색'과 '레저'를 한 번에 맛보기 원하는 관광객들에게 제격이다.
감은사지 대나무 그늘 아래
"나라를 지키는 용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며 바다에 묻히기를 자처한 문무왕.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양북면 봉길리 대왕암을 만나고 경주 시내로 돌아가는 길.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용당리 감은사지(感恩寺址)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쓸쓸한 풍경 속에 우뚝 솟은 2기의 삼층석탑이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일본 병사들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 뜻에서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에 아버지의 뜻을 이어 신문왕이 '호국 사찰'로 완성시켰다.
여타 절과는 달리 독특하게도 지하에 용도를 추측하기 힘든 큰 공간을 만든 감은사. 신문왕은 용이 된 아버지 문무왕이 그곳에서 쉴 수 있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옛사람들의 효심은 왕족이나 평범한 백성이나 매한가지였다.
사적 제31호인 감은사 터는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위치했다. 석탑과 금당(金堂) 터, 초석과 장대석 등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어 봄가을이면 신라 역사에 관심을 가진 중·고교생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여유롭게 절터와 삼층석탑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 하지만 푹푹 찌는 여름엔 그것도 마냥 쉬운 게 아니다. 그럴 때면 석탑 뒤편 촘촘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는 대나무 숲으로 숨어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신라가 번창하던 시기에도 분명 감은사에 대나무 숲이 있었을 터. 입이 없어 말하지는 못했겠지만, 그것들은 문무왕을 그리워하는 신문왕의 애끓는 심정을 눈앞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푸르고 또 푸른 빛깔로 하늘을 향해 뻗은 감은사지 대나무 사이에서 바라보는 절터와 석탑은 실력 빼어난 동양화가가 그려놓은 수묵화의 형상으로 여행자에게 다가온다. 때로는 화려한 색채보다 담담한 흑백의 풍광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때가 있다. 감은사지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짙은 대나무 그늘 아래선 서정적인 소설이나 <말도로르의 노래>를 쓴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1846~1870)의 작품를 읽는 게 어울릴 법하다.
금령총 특별전이 열리는 국립경주박물관
아르헨티나의 작가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천국은 도서관"이라고 했다. 시와 소설, 문학평론에 두루 뛰어났던 사람이었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역사와 유물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은 어떤 공간을 천국으로 느낄까? 아마도 박물관일 것이다.
1월 1일과 설·추석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방문객을 맞는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 역사와 불교미술, 고대 유물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과 지적 갈증을 풀어주는 마르지 않는 우물 같은 곳.
상설전시관인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에선 신라 건국에서부터 멸망 과정, 화려했던 신라의 불교문화, 월지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 야외 전시장에도 적지 않은 국보와 보물이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운 좋게도 박물관을 찾았을 땐 특별관에서 '금령총 금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금령총은 경주시 노동동 고분군에 있는 신라시대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1924년 진행된 조사·발굴 과정에서 기차 1량을 가득 채울 만한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재발굴이 진행 중이다.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천마총이나 금관총에서 나온 금관에 비해 크기가 작고(머리띠 지름 15cm), 옥(玉)으로 된 장식이 없다. 학계에선 나이 어린 왕자가 썼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장 오늘이라도 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 간다면 '진품' 금령총 금관과 화려한 금허리띠를 만날 수 있다. 저절로 눈길이 가는 선명한 노란색과 정교한 세공 기술이 감탄사를 부를 것이다. 신라가 '황금의 나라'로 불린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국립경주박물관을 찾는다는 건 '역사의 오솔길을 사색하며 걷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금령총 금관 전시는 31일까지 계속된다. 여기에 보너스 하나. 모든 전시장은 무료입장이다.
오마이뉴스
▲ 진평왕릉 인근 풀밭에서 간이의자를 펴고 망중한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
여행자는 알고 있다. 때로는 '길'을 잃는 것이 '또 다른 길'을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경상북도 경주엔 조용히 홀로 앉아 들뜬 마음을 차분히 달랠 공간이 많다. 경주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을 위해 '길을 벗어나' 사색과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장소 몇 곳을 소개한다.
▲ 진평왕릉 주위 풍경. |
진평왕릉 주변 벤치
너무나도 선명한 진녹색이 전해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에 '이곳이 과연 현실 속 공간이 맞나'라는 의문마저 들었다. 지척의 도로에선 차량이 질주하고 있음에도 이곳만은 매미와 풀벌레가 울어대는 피안(彼岸) 같았다.
족히 수백 년은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을 커다란 나무가 만들어낸 시원스런 그늘. 그 아래 접이식 간이의자를 펴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선경(仙境)이 따로 없었다. 그악스러운 8월의 더위가 한풀 꺾이는 느낌이 들었다.
경주시 보문동엔 신라 진평왕의 능이 자리해 있다. 널찍한 평야 한복판에 들어선 거대한 봉분. 그 풍경만으로도 돌올하지만, 진평왕릉의 진가(眞價)는 주변 거대한 녹지에서 드러난다. 소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수목과 '초원'이라 불러도 좋을 넓은 초록 풀밭, 여기에 고전적으로 디자인된 목조 벤치까지 그림처럼 준비돼 있었다.
소음과 매연 가득한 도심에서 지극히 가까운 곳에 이런 '사색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름이 알려진 여타 관광지와 달리 오가는 사람들이 적어 조용한 휴식이 가능해 보였다. 시원한 그늘에서 야외 독서를 원하는 이들에겐 안성맞춤이다.
1969년 사적 제180호로 지정된 진평왕릉을 호위하고 선 것은 궁궐의 병사들이 아닌 키 큰 나무 몇 그루. 그럼에도 왕의 깊은 잠을 방해할 이들은 없었다. 그만큼 주위 풍광은 고요하고 평화스럽다. 1천 년 전 서라벌 사람들도 이곳에서 피크닉과 데이트를 즐겼을 법하다.
능을 찾았던 날엔 대구에서 왔다는 중년 부부 한 쌍이 진평왕릉을 한 바퀴 돌아보곤 벤치에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정겹고 보기 좋았다. 그들의 목소리가 한없이 낮았던 이유는 1400년을 이어진 진평왕의 곤한 잠을 깨우기 싫어서였을까?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고 싶은 여행자에게 권하고픈 장소다.
▲ 안개 자욱한 삼릉 솔숲을 걸어가는 스님. |
▲ 경주시 배동 소나무 숲에 자리한 삼릉. |
삼릉 향기로운 소나무 숲
경주시 배동 울창한 소나무 숲속엔 신라 왕들의 유택(幽宅)으로 추정되는 3기의 능이 있다. 여기에 잠든 이들은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
신덕왕과 경명왕은 신라가 기울어가던 시기의 통치자였다. 당연지사 외부의 침입이 잦았고, 이로 인해 백성들의 고통도 극심했다. 국력이 쇠하니 영토 또한 터무니없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신라 전성기의 왕들처럼 거대하고 화려한 장식의 왕릉을 만들 여력이 없었을 터.
삼릉 모두는 봉분이 낮고 능을 지키는 석상(石像)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허물어진 역사의 폐허에 숨겨진 보석처럼 반짝인다. 의외로 이런 비극의 현장에서 감동을 느끼는 여행자가 많다고 들었다. 아주 가끔은 번듯함보다 남루함이 빛나는 시간이 있다.
삼릉을 삼릉답게 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오브제'는 주변을 둘러싼 기묘한 형상의 소나무 수백 그루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서늘한 음지는 폭염에 시달려온 여행자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돼준다.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밀어(蜜語)를 속삭이고 싶은 연인에게도 최고의 성지로 다가온다.
삼릉은 경주국립공원 남산 지구의 시발점이다. 이곳을 출발해 금오봉-용장사지-용장골까지 가는 4.6km 등산 코스도 인기가 좋다. 산을 오르는 게 익숙한 사람의 경우 3시간이면 주파가 가능하다고 한다.
"등산길에선 100개가 넘는 갖가지 형태의 불상과 석탑, 절터 등을 볼 수 있어 심심할 겨를이 없다"는 게 경주국립공원사무소의 설명. '사색'과 '레저'를 한 번에 맛보기 원하는 관광객들에게 제격이다.
▲ 감은사지 삼층석탑 뒤로 짙은 대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
▲ 감은사지로 올라가는 입구. |
감은사지 대나무 그늘 아래
"나라를 지키는 용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며 바다에 묻히기를 자처한 문무왕.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양북면 봉길리 대왕암을 만나고 경주 시내로 돌아가는 길.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용당리 감은사지(感恩寺址)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쓸쓸한 풍경 속에 우뚝 솟은 2기의 삼층석탑이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일본 병사들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 뜻에서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에 아버지의 뜻을 이어 신문왕이 '호국 사찰'로 완성시켰다.
여타 절과는 달리 독특하게도 지하에 용도를 추측하기 힘든 큰 공간을 만든 감은사. 신문왕은 용이 된 아버지 문무왕이 그곳에서 쉴 수 있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옛사람들의 효심은 왕족이나 평범한 백성이나 매한가지였다.
사적 제31호인 감은사 터는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위치했다. 석탑과 금당(金堂) 터, 초석과 장대석 등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어 봄가을이면 신라 역사에 관심을 가진 중·고교생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여유롭게 절터와 삼층석탑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 하지만 푹푹 찌는 여름엔 그것도 마냥 쉬운 게 아니다. 그럴 때면 석탑 뒤편 촘촘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는 대나무 숲으로 숨어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신라가 번창하던 시기에도 분명 감은사에 대나무 숲이 있었을 터. 입이 없어 말하지는 못했겠지만, 그것들은 문무왕을 그리워하는 신문왕의 애끓는 심정을 눈앞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푸르고 또 푸른 빛깔로 하늘을 향해 뻗은 감은사지 대나무 사이에서 바라보는 절터와 석탑은 실력 빼어난 동양화가가 그려놓은 수묵화의 형상으로 여행자에게 다가온다. 때로는 화려한 색채보다 담담한 흑백의 풍광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때가 있다. 감은사지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짙은 대나무 그늘 아래선 서정적인 소설이나 <말도로르의 노래>를 쓴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1846~1870)의 작품를 읽는 게 어울릴 법하다.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만난 금령총 금관. |
▲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허리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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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령총 특별전이 열리는 국립경주박물관
아르헨티나의 작가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천국은 도서관"이라고 했다. 시와 소설, 문학평론에 두루 뛰어났던 사람이었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역사와 유물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은 어떤 공간을 천국으로 느낄까? 아마도 박물관일 것이다.
1월 1일과 설·추석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방문객을 맞는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 역사와 불교미술, 고대 유물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과 지적 갈증을 풀어주는 마르지 않는 우물 같은 곳.
상설전시관인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에선 신라 건국에서부터 멸망 과정, 화려했던 신라의 불교문화, 월지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 야외 전시장에도 적지 않은 국보와 보물이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운 좋게도 박물관을 찾았을 땐 특별관에서 '금령총 금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금령총은 경주시 노동동 고분군에 있는 신라시대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1924년 진행된 조사·발굴 과정에서 기차 1량을 가득 채울 만한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재발굴이 진행 중이다.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천마총이나 금관총에서 나온 금관에 비해 크기가 작고(머리띠 지름 15cm), 옥(玉)으로 된 장식이 없다. 학계에선 나이 어린 왕자가 썼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장 오늘이라도 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 간다면 '진품' 금령총 금관과 화려한 금허리띠를 만날 수 있다. 저절로 눈길이 가는 선명한 노란색과 정교한 세공 기술이 감탄사를 부를 것이다. 신라가 '황금의 나라'로 불린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국립경주박물관을 찾는다는 건 '역사의 오솔길을 사색하며 걷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금령총 금관 전시는 31일까지 계속된다. 여기에 보너스 하나. 모든 전시장은 무료입장이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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